별자리

처녀자리의 역사와 신화

W.소나무 2021. 1. 15. 10:50

 

처녀자리의 역사

처녀자리 별자리의 별은 현재의 천칭자리에서 대부분 분리 되었다. 처녀자리 12궁도에서 처녀자리 기호는 사자자리와 천칭자리 사이에 있고, 12궁도의 여섯 번째 30도를 취한다. 처녀자리는 가을을 알리는 불변의 징조이다. 처녀자리는 화창한 여름과 모든 것이 사그라지는 비가 오는 가을 사이의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에, 살작 우울한 느낌이 있다. 

이 별자리는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에서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약 1000년에서 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The Furrow"로 알려져 있는데, 샬라 여신의 곡식 귀를 나타내며, 이 별자리의 중요한 별인 스피카는 "곡물의 귀"를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이것은 결과를 주는 힘든 일의 이미지를 준다. 처녀자리 사람들은 종종 밀을 손에 들고 있는 여자로 묘사된다.

 


처녀자리의 신화

처녀자리는 종종 그리스 로마의 농업의 여신, 데메트르와 케레스를 연상하게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처녀자리하면 아스트래아를 떠올렸다. 아스트래아는 인류의 5대 퇴화기 중 하나인 황금시대에

인간과 함께 살았던 마지막 천상의 사람이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에리고네의 집을 찾은 디오니소스가 있다.

에리고네는 아테네의 가난한 농부 이카리오스의 딸로 디오니소스가 인간들에게 포도나무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러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왔을 때 신의 사랑을 받았다.

 

이카리오스는 디오니소스가 지시한 대로 자신이 담근 포도주를 이웃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맛보게 하였다. 하지만 포도주를 마신 이들이 취해서 쓰러지자 사람들은 이카리오스가 자신들에게 독을 먹이려 했다고 여겨 몽둥이로 그를 때려죽였다.

이카리오스가 며칠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에리고네는 충견 마이라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마이라는 결국 숲속에 매장도 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는 이카리오스의 시신을 찾아냈고, 에리고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근처의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 마이라도 근처의 우물에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의 분노

에리고네와 이카리오스의 죽음에 분노한 디오니소스는 아테네인들에게 재앙을 내렸다. 그러자 아테네의 처녀들이 광기에 사로잡혀 에리고네처럼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고 죽기 시작했다. 아테네인들이 까닭을 몰라 델포이의 신탁에 문의하자 디오니소스가 에리고네와 이카리오스의 죽음에 복수하는 것이라는 답이 내려졌다.

이에 아테네인들은 이카리오스를 죽인 자들을 처형하고 두 부녀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냈는데, 제의가 진행되는 동안 아테네의 젊은 처녀들을 나무에 매달았다고 한다. 나중에는 처녀를 직접 매다는 대신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원반을 매달았는데 이것이 ‘오스킬라’ 축제의 기원이다.

 


처녀자리 신화와 처녀자리 별자리의 연관성

이 두 신화 사이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는 인류의 어리석음과 무지에 있다. 두 신화 속의 모든 배우들은 감사함의 부족과 낮은 도덕적, 지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하늘에서 끝이 났다. 지식이 중시되지 않는 교육받은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문제의 근원이 해결될 때까지 수 세대에 걸쳐 움직일 수 있는 처녀자리 신화에는 비극이 있다.

우리는 종종 처녀자리가 더 높은 대의명분을 위해 희생하는 외로운 여성들의 표시라고 가정하는데, 이것은 이 이야기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처녀자리 표지판에는 가족과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여성의 사랑을 담은 사랑 이야기가 없다. 이 별자리와 그 별자리가 할당되어 있는 표지판은 한 소녀가 그녀의 아버지와 죽음에 이르게 만든 관계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종종 사회적 또는 감정적 자살이 될 수 있다. 신체적인 자살이 아니라.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이카루스가 마지막으로 생각해낸 생각 속에 숨겨진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존재를 해침으로써 자신의 운명에 서명했다는 것을 이해했고, 비록 그의 삶의 희생이 이루어졌지만, 그 끝에는 영적이고 계몽적인 순간, 즉 어떤 삶의 진정한 가치가 보여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